[편집인 칼럼] : 낙엽을 밟고 걸어가는 길(36)
페이지 정보

본문

편집인 장익진
가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을 떠올리게 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발 끝으로 전해져 오는 아늑한 감촉, 그리고 머리 위로 펼쳐진 붉고 노란 수채화 같은 풍경. 낙엽이 깔린 길을 걸어가는 일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 지친 일상을 다독이고 삶의 리듬을 되찾는 깊은 명상의 시간이 되어준다.
►바스락, 발 끝에서 피어나는 가을의 소리
바쁜 도심 속에서 우리는 늘 빠르게 걷는 데 익숙해져 있다.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바쁘게 누비던 발걸음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든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퍼져나가는 '바스락' 소리는 계절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삭임과 같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지럽던 마음의 소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롯이 '지금, 여기'의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시각적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가을의 음향은 청각을 통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차분한 위로를 전한다.
►비움과 받아들임의 길
나무는 추운 겨울을 생존해 내기 위해 한 해 동안 정성껏 피워낸 잎들을 미련 없이 떨구어 낸다. 떨어진 낙엽은 나무의 비움이자, 다가올 봄에 새로이 피어날 생명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준비다.
낙엽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순응과 내려놓음의 과정을 함께 체감하는 일이다. 발 밑에 부서지는 낙엽들을 보며,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놓지 못해 쥐고 있던 수많은 고민과 집착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를 비워내는 나무처럼, 우리 역시 그 길 위에서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삶을 다시 걷게 하는 계절의 선물
길가에 쌓인 낙엽은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 나무에게 다시 영양분이 되어준다. 낙엽의 끝은 소멸이 아닌, 또 다른 생명의 순환을 위한 시작인 셈이다.
바쁜 일상에 지쳐 마음에 여유가 사라질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까운 낙엽 길을 거닐어 보세요. 발 밑에서 울려 퍼지는 서정적인 음률에 발걸음을 맞추다 보면 어느덧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평온함이 채워진다. 낙엽을 밟고 걷는 그 짧은 산책은, 우리에게 다가올 계절과 삶을 다시 씩씩하게 걸어나갈 작은 에너지를 선사해 줄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들으며
바람이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계절이 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을을 노래한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한국 대중가요사에 그윽한 아날로그적 낭만과 짙은 애수를 남긴 노래를 꼽자면 단연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일 것이다.
►팝과 가요의 감각적 만남
1960년대 후반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물들인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스티(Elvis Presley)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원곡으로 한다. 해외 팝송을 번안하여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던 그 시절, 작사가 강찬호는 원곡이 가진 아련한 이별의 감성을 '낙엽'이라는 가을의 대표적인 시적 상징과 완벽히 접목했다.
"찬바람 불어오면 외로워지는 마음 / 낙엽이 떨어지듯 가버린 그 사람"
이 첫 구절은 듣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쓸쓸한 가을 풍경 한가운데로 떨어뜨린다. 자연의 계절적 순환인 '낙엽'을 스러져간 이별의 아픔과 결합하여, 흘러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으로 승화시켰다.
►'한국의 엘비스' 차중락의 불꽃 같은 삶
이 노래를 이야기할 때 가창자인 차중락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록 밴드 '키보이스'의 메인 보컬 출신인 그는 미성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매력적인 바리톤 음색으로 시대를 사로잡았다. 수려한 외모와 압도적인 스타성 덕분에 '한국의 엘비스 프레스리'라 불리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찬란하게 빛나던 무대와 달리, 그의 삶은 노래 제목처럼 가을 낙엽과 같이 짧고 아련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그는, 가수의 길을 걸은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1968년 11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가 떠난 계절 역시 가을이었기에, 이 노래는 더욱 비극적이고 영원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시대를 넘어 울려 퍼지는 아날로그적 감성
오늘날 대중음악은 화려한 비트와 자극적인 사운드로 가득 차 있지만, 때로는 정제된 멜로디와 솔직하고 절절한 가사가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이 그리워지곤 한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단지 지나간 옛 노래에 그치지 않고, 가을이라는 계절이 올 때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길가를 채우는 계절, 이 노래의 묵직한 멜로디에 귀를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짧았던 차중락의 삶과 우리가 지나쳐 온 지난날의 사랑들이 그 클래식한 음색 속에 아련하게 스며 나올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