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집인 칼럼] : 한가위를 보내며 그리운 소꿉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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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장익진
어느덧 커다랗고 둥근 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한가위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나누고 안부를 묻는 이 풍성한 명절날,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다 문득 가슴 한구석을 환하게 밝히는 얼굴 하나가 있다. 어릴 적 골목길을 함께 누비던 그리운 소꿉친구다.
추석은 본래 거두어들임과 감사, 그리고 돌아감이 있는 시간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잊고 살았던 고향의 흙냄새, 그리고 그 길목마다 짙게 남아있는 유년의 기억들이 명절의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그 기억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소꿉친구가 서 있다.
마당 구석에서 흙밥을 짓고, 감, 밤나무 아래서 떨어진 감과 밤을 줍던 시절, 우리는 보름달처럼 차오른 순수한 웃음 하나만으로 온 하루를 가득 채우곤 했다.
성인이 되어 맺는 사회적 관계들은 저마다의 목적과 가식,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 떠올리는 소꿉친구는 다르다. 그 친구는 나의 가장 서툴고 모난 모습, 초라했던 시절까지도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었던 사람이다.
잘나고 못남을 따지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가슴 가득 풍요로움을 느꼈던 그 시절의 유대감은 세월이 흘러 삶의 터전이 달라진 지금도 결코 바래지 않는다.
어쩌면 명절날 우리가 소꿉친구를 더욱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친구의 눈동자에 비쳤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나'를 찾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지치고 닳아버린 지금의 나에게, 소꿉친구와의 추억은 "너는 원래 그렇게 환하게 웃던 아이였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위로가 된다.
한가위의 풍성함이 곡식과 과일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었던 순수한 온기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달콤함과 알싸함, 서스펜스,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계절의 온도. 참외서리와 겨울 토끼몰이는 지금 돌아보면 어린 날의 우리만이 누릴 수 있었던 가장 강렬하고도 무해한 스릴이었다.
►여름밤의 서스펜스, 노랗게 익어간 참외서리
원두막 불빛이 가물거리던 여름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참외밭 둑에 엎드려 있던 순간을 기억한다. 풀벌레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던 밤공기 속에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혹여 밭주인 어르신에게 들릴까 봐 옷자락을 꼭 쥐고 밭고랑을 기어가곤 했다.
손끝에 닿던 밭흙의 눅눅하고 따뜻한 감촉, 그리고 손아귀에 꽉 쥐어지던 노랗고 동그란 참외의 묵직함. "게 누구냐!" 하는 고함에 신발 한 짝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내달렸던 그 밤의 도망길은, 무서움보다 알 수 없는 해방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냇물에 쓱쓱 문질러 씻지도 않은 채 이빨로 껍질을 베어 물었을 때, 입안 가득 터지던 참외의 달콤하고 알싸한 즙. 그것은 단순한 과일의 맛이 아니라, 비밀을 공유한 우리들만의 끈끈한 공범 의식이자 찬란했던 여름의 맛이었다.
►하얀 고요를 깨우던 함박눈과 토끼몰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질 만큼 굵은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던 날이면, 뒷동산은 우리들만의 거대한 사냥터가 되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뽀드득 소리만이 고요한 산속을 울릴 때,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밭 위로 선명하게 찍힌 작은 토끼 발자국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들의 눈빛은 일제히 번뜩였다.
"저쪽이다!", "아래쪽 길을 막아!"
시린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산비탈을 뒹굴듯 내달리던 아이들의 함성.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뿜어져 나오던 하얀 김, 그리고 추위마저 잊게 만들었던 가슴속 불꽃.
결국 단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한 채 빈손으로 산을 내려오기 일쑤였지만, 해 질 녘 노을빛에 붉게 물든 눈밭 위에 누워 서로의 붉어진 코와 볼을 보며 깔깔대던 그 시간이 있었다.
털장갑 사이로 스며든 얼음물에 손이 새빨갛게 얼어붙어도, 마음만큼은 햇살을 품은 것처럼 시리도록 뜨거웠던 그 겨울의 뒷동산이 참으로 그립다.
계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시절 우리를 둘러싼 풍경보다, 그 서스펜스와 추위 속에서도 서로가 있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던 그 '함께함'의 온기였을 것이다.
털장갑 사이로 스며든 얼음물에 손이 새빨갛게 얼어붙어도, 마음만큼은 햇살을 품은 것처럼 시리도록 뜨거웠던 그 겨울의 뒷동산이 참으로 그립다.
둥근 달빛이 온 누리를 고루 비추듯, 멀리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친구에게도 이 밤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추석 잘 보내고 있지?"라는 투박한 안부 문자 한 줄을 적어 내려간다. 소꿉친구와 함께한 그 둥글고 밝았던 시절이 있기에, 오늘의 한가위는 한층 더 깊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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