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니노이 아키노 암살 사건, 이제 더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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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magandapress.com - 2025년 8월 21일 | 오전 10시 40분

▪니노이 아키노, 봉봉 마르코스
[필리핀-마닐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그의 가족의 유명한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이례적인 성명에서 필리핀 국민들이 고인이 된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상원의원의 죽음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르코스는 아키노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를 거부했고, 계엄령 반대 인물의 암살을 기념하는 공휴일 자체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성명을 신중하게 작성했다.
마르코스는 성명에서 "니노이 아키노의 날을 기념함으로써 여러 세대와 대중의 기억 속에 울려 퍼지는 우리 국가의 공유된 이야기의 한 장이 빛을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는 이 사건에 더욱 명확하게, 그리고 더 깊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는 반응보다는 성찰을 더 많이 요구하며, 그러한 성찰을 통해 시민의 의무에 대한 더욱 명확한 이해가 생겨난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아키노는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시니어(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버지)의 주요 경쟁자였다. 그는 마르코스 시니어의 계엄령 시행을 강력히 비판했으며, 상원의원 재임 중 정치범으로 복역하기도 했다.
그는 심장마비로 인해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마르코스 부부와 맞서기 위해 필리핀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필리핀 땅을 밟기도 전에 아키노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키노의 암살은 마르코스 시니어를 축출하고 그의 가족을 국외로 추방한 EDSA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마르코스 시니어가 아키노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마르코스의 자녀들은 천천히 다시 권력을 잡았고, 마르코스 주니어는 대통령으로, 아이미 마르코스는 상원의원으로 취임했다.
현 대통령은 아키노 축일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역사가 지속적인 교훈보다 최종적인 판단을 덜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우리가 봉사하고, 경청하고, 더 큰 목적을 지닌 직책의 무게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더욱 날카롭게 한다."
"따라서 오늘은 냉정함, 양심, 그리고 선견지명을 가지고 통치하라는 초대가 된다. 과거의 교훈이 우리의 행동과 제도의 도덕적 구조에 반영될 때 우리의 기념은 의미를 갖게 된다."라고 마르코스 주니어는 말했다.
마르코스 시니어가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거나 살해당했다. 마르코스 가족도 수십억 페소를 가지고 나라를 떠났었고, 현재 마르코스 가문의 여러 구성원은 현재 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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